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 출생
- 1983년 8월 18일 (만 28세), 레바논 베이루트 | 돼지띠, 사자자리
- 데뷔
- 2007년 1집 앨범 'Life In Cartoon Motion'
- 소속
- 카사블랑카 레코드
- 학력
- 왕립 음악대학
- 사이트
- 트위터
팝가수 미카(MIKA, 28)가 커밍아웃(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을 했다. 미카의 커밍아웃은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의 동성애자잡지 인스팅트(Instinct)가...
미카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국인이며 어머니는 레바논인. 5남매 중 셋째로, 위로는 두 명의 누나가 있으며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1] 미카가 한 살이었을 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내전이 격화되어 미카의 가족은 레바논을 떠나 파리로 이주해야 했다.[1][2] 7살 때 너바나의 〈Heart-Shaped Box〉를 듣고 첫 번째 곡을 쓰는데, 미카는 그것을 '분노'라는 제목의 끔찍한 피아노 반주곡이었다고 회상한다.[3]
그가 9살 때, 아버지가 인질이 되어 쿠웨이트의 미국 대사관에 감금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비호를 받게 된 미카 일가는 런던으로 이주했다.
런던에서 미카는 프랑스인 학교에 입학했지만 동급생들의 심한 따돌림에 난독증까지 겹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그가 11살 때 교육기관에서는 그에게 맞는 새 학교를 찾을 때까지 그를 수업에서 격리시켰는데 이 기간 동안 미카는 어머니에게서 6~8개월간 자택교육을 받았고, 러시아인 소프라노 오페라 가수에게 노래 지도를 받으며 타고난 재능을 연마했다.
이후 영국의 대표적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가극 ‘천로역정’에 출연했으며 로얄 오페라 하우스부터 브리티시 항공사, 껌 CM송 까지 이 노래 잘하는 소년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달려가 일을 했다. 하지만 그의 노동량에 비해 정작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많지 않았다. 돈에 밝지 못한 미카와 그의 어머니가 적정한 대가에 대한 정보 없이, 업체가 주는 대로 임금을 받은 게 그 원인이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으로 인해 경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미카는 켄싱턴에 위치한 세인트 필립스 학교[거기서 Schola Cantorum(성 필립 합창단)의 장을 맡았다],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졸업한 후 런던 정치경제대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그곳을 나와 명문음악학교인 왕립음악대학에 입학했다. 경제 대학보다는 음악 학교가 더 맞는 듯이 보였지만 그는 카사블랑카 레코드에서 자신의 첫 번째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중도에 휴학했다.[4] 미카는 다른 사람이 이미 지어놓은 오페라를 부르기 보다는 스스로 만든 곡을 부르고 싶었다.[5]
미카는 이어 이름의 "c"를 "k"로 바꾸는데, 사람들이 종종 자신의 이름 "Mica"를 마이카나 미샤로 잘못 발음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6]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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